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은 왜 싸울까? 분쟁의 역사와 원인 완벽 정리

중동 지역의 비극적인 갈등은 팔레스타인 영토를 둘러싼 유대인과 아랍계 민족 사이의 치열한 주권 침해 및 점령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떠한 역사적 맥락에서 이러한 분쟁의 씨앗이 심어졌는지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중동전쟁

 

분쟁의 뿌리

유대인의 선조인 아브라함 집단이 팔레스타인 가나안 땅으로 이동한 뒤 그 후손들이 이집트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겼습니다.

이후 유대인들이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가려 했을 땐,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생활 터전을 가꾸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팔레스타인 일대를 영국이 위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해당 구역은 아랍인의 비율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유대인은 소수에 불과했으나, 강대국 중심의 국제사회가 이 지역에 유대인들의 정착 국가를 세우기로 의결했습니다. 이 결정이 훗날 양 민족 간 수십 년에 걸친 갈등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분쟁의 본격화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대를 유대인 통치 구역과 아랍인 통치 구역으로 분할하고, 예루살렘은 영토 분쟁을 방지하고자 유엔 직할 국제공동통치구역으로 지정하는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듬해인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을 공식 선언함에 따라 유대인에게는 민족적 숙원이 성취되었으나, 아랍인들에게는 영토와 터전을 잃게 된 대재앙의 비극이 막을 올렸습니다.

 

1차 중동전쟁 (1948)

이스라엘의 건국 직후, 이집트를 필두로 한 아랍 연합군(요르단, 시리아 등 7개국)이 이스라엘을 전격 공격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터졌습니다.

동포 팔레스타인인을 보호한다는 구실을 내세웠지만, 아랍 각국은 사실 해당 영토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력 확장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각국의 이기적인 영토 확장 탐욕으로 인해 아랍 연합군은 단합되지 못하고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전쟁의 결과 이스라엘의 점령 영토는 더욱 넓어졌고, 70만 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난민이 양산되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등으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2차 / 3차 중동전쟁 (1956-1967)

1956년에 일어난 제2차 중동전쟁(수에즈 충돌)은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조치로 시작되었으나, 미·소 양대 강대국의 중재로 빠르게 수습되었습니다.

이어 1967년 개전한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6일이라는 단기간 안에 가자지구 및 서안지구를 전격 점령하며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4차 중동전쟁 (1973)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기습 공격을 감행하면서 제4차 중동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초반에는 아랍 진영이 이스라엘을 밀어붙였으나 결국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전세가 뒤집혔습니다.

분노한 아랍 산유국들은 이스라엘 편을 든 서방 세계에 대한 석유 수출을 제한했고, 이는 제1차 오일쇼크(석유 파동)로 이어져 글로벌 경제 전반에 막대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러나 이 전란은 역설적으로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슬람 혁명 (1979년)

1979년 이란에서 친미 노선을 걷던 팔레비 정권이 축출되고 강력한 반미 성향으로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종교 최고지도자 호메이니의 주도 아래 이슬람 원리주의 기반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출범했습니다.

당시 혁명 세력의 핵심 슬로건은 “억압받는 민중의 해방”이었으며, 이란 시각에서 가장 박해받는 자들은 팔레스타인 민중이었기에 이스라엘을 주적으로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1차 / 2차 인티파다

1987년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대규모 불복종 민중 항쟁인 제1차 인티파다가 전개되었습니다.

1993년에는 극적으로 오슬로 협정이 맺어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이스라엘이 서로의 존재를 공식 인정했습니다. 이로써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들어서며 중동 평화의 물꼬가 트이는 듯했으나, 2000년 제2차 인티파다가 다시 불붙으면서 평화 기조는 산산조각 났습니다.

 

2000년대 이후

2006년 – 이스라엘-헤즈볼라 간의 레바논 충돌

2008년 – 이스라엘과 무장단체 하마스의 가자지구 분쟁

2014년 – 가자 지역에서의 유혈 군사 충돌

2020년 – 아브라함 협정 체결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등 주요 아랍국과 이스라엘의 외교 관계 정상화)

2021년 – 예루살렘 격돌 및 가자지구 분쟁 재발

2023년 – 하마스의 대규모 기습 및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면전 발발

2024년 –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전면 무력 충돌

 


 

 

이처럼 유혈 분쟁이 수십 년 동안 지속되는 까닭은 붉어진 토지 문제부터 종교적 갈등, 민족의 정체성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에게 타협할 수 없는 무상의 성지이기에 주권 양보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미국, 이란 및 주위 아랍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까지 얽히면서 문제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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